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문단 편집) ==== 전성기: 세미라미데 ==== 이처럼 세비야의 이발사로 겨우 24살의 나이에 대선배의 아성까지 넘어버린 로시니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세비야의 이발사 이후 8년간 그는 20개의 오페라를 썼는데, 이 중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오텔로(로시니)|오텔로(Otello, 1816)]]에서 오페라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비극적이고 복잡한 스토리와 진지한 성격묘사는 이후 벨리니 - 베르디 - 푸치니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비극 오페라의 효시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오텔로는 결말 부분이 원작처럼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와 해피엔딩에 가깝게 끝나는 경우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로시니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아무리 내용이 비극적이라도 처참한 결말로 끝나는 오페라를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오텔로 항목 참조.] 또 1817년에 상연된 신데렐라(La Cenerentola)는 거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필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에도 이 신데렐라는 로시니 오페라 가운데 세비야의 이발사 다음으로 자주 공연된다.] 로시니의 명성은 이미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로시니의 오페라는 더 이상 성공여부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30세가 되던 1822년에는 스페인 출신의 유명 소프라노 가수이자 자신의 중요한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를 담당했던 이사벨라 콜브란과 결혼하였다.[* 이사벨라 콜브란은 로시니 음악을 연주하기 어렵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 가수이기도 하다. 콜브란은 기본적으로 화려한 벨칸토 창법을 구사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지만 한편으로는 초고음으로부터 거의 메조소프라노 수준의 낮은 음까지 구사할 수 있었을 정도로 음역이 넓었고 그만큼 감정표현도 뛰어났다. 로시니의 주요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배역은 모두 이 콜브란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작곡되었으며, 그런 탓에 이 콜브란이 맡았던 배역은 21세기의 A급 가수들도 상당히 힘들어 할 정도로 음역이 넓다.] 결혼 직후 자신의 음악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던 고전음악의 중심지 [[빈(오스트리아)|빈]]을 방문해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신데렐라와 젤미라(Zelmira) 등의 오페라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실세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고. 그는 빈에서 [[베토벤]]과 만나기를 원했고 결국 만남이 성사되었는데, 당시 베토벤은 귀가 완전히 멀어서 통역의 중개로 필답을 주고받아야 했다. 이 때 베토벤은 로시니에게, > 아, 로시니 선생, 당신이 바로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계속되는 한 계속 공연될 오페라인 듯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희가극(오페라 부파)만 쓰세요. 다른 장르의 오페라는 당신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소. 분명 칭찬같은데 그냥 덕담으로 듣기에는 뭔가 가시가 돋힌 듯한, 지극히 베토벤다운 충고를 했다고 한다. 로시니를 만나기 전 베토벤은 분명 세비야의 이발사 공연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귀머거리가 된 그가 과연 이 오페라를 제대로 즐겼을지는 의문. 그러다 보니 이처럼 어정쩡한 덕담밖에 해 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로시니는 로시니대로 이 거장 음악가가 허름한 하숙집에서 볼품없는 옷차림으로 지내는 것을 보고 베토벤을 위한 모금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는데 실제로 모금활동이 행해졌다는 기록은 없다. 빈에서 이런 저런 이슈를 남긴 로시니는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Teatro La Fenice)을 위해 비극 세미라미데(Semiramide)를 작곡했는데,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상연된 그의 마지막 오페라가 되었다. 이 세미라미데의 서곡을 들어보면 저음부의 비중을 높여서 한층 장중한 음향을 구현하고 있으며 나름 복잡한 전개부가 있고 조용하게 진행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갑작스러운 클라이맥스로 이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등, 이 오페라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세심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현하고 있다.[* 이 세미라미데의 꼼꼼한 관현악 수법은 베토벤의 영향 때문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관현악법과 별도로 이 세미라미데는 오페라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오페라 세리아(정가극) 양식으로 작곡된 최후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이 세미라미데는 너무 길고 연주하기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그간 서곡만 연주되다가 20세기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다시 공연되기 시작했는데, 가수들에게 극한의 능력을 요구하는 오페라로 악명이 높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명작을 겨우 33일만에 작곡했다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